Page 7 - 2019 KSNE YEAR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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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잉글랜드 한국학교 (1975~2019)                        1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뉴잉글랜드 한국학교의 44 년 역사 < 1975~2017 >




                                            학교 설립 배경과 역사


                                                                                        (고) 백 린, 제 2 대 교장

                                            뉴잉글랜드  한국학교  제  2 대  교장을  맡게  된  동기는  지난
                                            1975 년  안창수  선생께서  초대  교장을  하실  때  나에게  역사
                                            강의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  역사를  한  학기  가르친  후
                                            교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  당시  이사회는  없었고  학부모회가
                                            있었으며,  Tufts  대학의  김영호  씨가  후원을  하였고,  한인회
                                            에서는  1 년에  $1,000 을  운영비로  지원했으며,  등록금을  받아
                                            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학생  30 명에  반은  3 반,  최영방,
                                            차진선, 양광자 선생님)
                                            가르치는  사람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가르쳐야  학생들에게
                                            재대로 교육을 시킬 수 있다. 한국 학교가 있어야 하고 한글교육
                                            을 시켜야 하는 이유는 민족이 살아 남고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또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 발전 계승시키기 위함이다.

                                            한국학교가 Newton 에 있는 Lutheran 교회로 이전 당시(정상무
                                            한인회장  때)  김갑동  목사께서  교회를  얻기  위해  애쓰다가
           학교를  먼저  옮기게  되었다.  이  당시  학생  37 명에  4 반이  되었음.  (김홍렬,  남종훈,  김영숙
           선생님)  그러나  2 년  후  Lutheran  교회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고  렉싱턴에  있는  성요한  교회
           건물로  옮겼다(김은한  박사의  주선에  의해  Dr.  Corson 의  도움으로  옮기게  됨).  그  당시에는
           Andover 의 북부 한인교회와 Brookline 교회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주일 학교에서 한글을 조금
           가르쳤지만 한국 학교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다. 그 당시에 문교부에 정식으로 등록된 학교는
           우리 학교와 뉴욕의 허병렬 교장 선생님의 뉴욕한국학교 뿐이었다. (‘한미 백년사’ 책에 소개 됨)
           학교는 교수진과 전통이 훌륭해야 한다. 그러나,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 19 명이 되었고 재정적
           으로도 힘들게 되었다. 해결책으로 각 교회에서 $500 씩 내도록 했으며, 다섯 교회에서 $2,500
           이 지원되었고 뉴욕 영사관에서 $250 이 왔음(뉴욕 영사관에서는 그 후 $2,500 이 왔고, 매년
           $1,000 씩  받았는데  그  당시  총영사관에서  돈을  받은  학교는  없었다).  1985 년에는  더  이상
           교장직을 계속하기가 어려워졌다. 학교는 재정이 튼튼해야 하고 교장은 덕망과 학식을 겸비해야
           하는 데 그런 교장을 찾기가 힘들었다. 한인회에서는 여러 이유로 한국 학교를 그만하기를 원했
           다.(당시 한인회장 조성구 씨) NE 한인 회가 비영리 단체가 된 것은 한국 학교 때문이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성요한 교회에서 학교운영을 돕겠다고 전해왔다. 제의를 받고 어떻게 해서
           라도  학교의  전통을  이어갈  것인가에  대해  토의를  했다.  첫째,  성요한  교회에서  운영을  돕되
           절대 간섭하지 않겠다. 둘째, 이사회는 별도로 운영한다. 셋째, 교장 임명은 목사가 하지 않겠
           다는 조건으로 남은 운영비 $1,700 정도와 함께 운영 지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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